그랬대
할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아빤 술에 잔뜩 취해
소주 냄새가 신발장을 타고 안방을 적시네
허물처럼 넥타일 풀어헤치곤 술이 덜 깼는지 도리도리
취하면 어린아이가 돼버리는 걸까 갓 스물 난 알 리 없지
아빠 고생하셨다며 받아 든 옷의 무게
학교 전공서적을 담은 내 책가방의 무겐
비슷한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곤
옷을 든 팔은 바닥에 거의 닿으려 했었지 뭐
취하면 몇 개 국어로 사랑한다 말하는 우리 아빠
그날따라 어디에도 없는 사람처럼 크게 침묵하다
나를 돌아봤는데 눈은 추웠는지 쌍꺼풀을 두껍게 덮었고
그 안은 수년째 가뭄을 달래듯 하얀 폭우가 쏟아져
우리 아빠 운다 아빠가 우는데
난 울면 안 된다는 걸 뭔가 자전거 배우듯이 깨달았네
간신히 버티고 서있는 내 눈앞에 당신이 무너지네
그리고 당신이 했던 말은 평생 담기겠지 내게 깊게
너한텐 할아버지지만 나한텐 아빠
아빠와 난 서있어 같은 공간 헌데 큰 온도 차
너희 할아버지 원래 내 아빠였고
내 아빠이기 전엔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대 그랬대 한나야
엄마랑 영화 보러 가는 길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
그 사이 스며드는 찬바람은 12월이 다 왔다는 거지
이른 겨울바람은 손으로 꽉 쥐어도 새어나가는 모래처럼
엄마의 스웨터를 파고들고 겨드랑인 자석처럼 딱 붙어
손을 펴 엄마의 손을 맞잡네
얼마만인지 그대 손을 잡는 게 아마 첫사랑이 부러질 때
울면서 안긴 적 빼곤 없는 거 같은데 그게 벌써
오래 전인데 여태 뭐 했나 싶어 손을 꽉 잡아
그래도 엄마 손잡네 이 말에 멋쩍게 웃으며
이제 맨날 잡을게 엄마 있을 때 잘해 이 말에
겨울이 한 발짝 가깝게 다가온 것 같은 기분은 아마
할머니 때문일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이 아니었나 봐
사랑해 문자로는 수도 없이 했던 말
찬바람에 오그라든 목구멍에 붙어 더 올라 오질 않네
애꿎은 침만 삼키다가 나는 엄마의 손을 더 꽉 잡아
영원히 놓지 않을 듯이 당신을 절대 놓지 않아
너한텐 할머니지만 나한텐 엄마
엄마와 난 서있어 같은 공간 헌데 큰 온도 차
너희 할머니 원래 내 엄마였고
내 엄마이기 전엔 할머니의 딸이었대 그랬대 한나야